크래프톤 정글 4주차 WIL

WIL: Weekly I Learned; 또는 What I Learned This Week

컴퓨팅적 사고로 전환하다

시간이 정말 빠릅니다. 미니프로젝트 끝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4주차가 지나가 있습니다. 밥 먹고 백준만 풀기를 4주, 이로써 저희는 "컴퓨팅 사고로의 전환"의 1-4주차를 끝마치게 되었습니다. 이번 1-4주차에서 배운 내용을 정리하여 대략 3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자료구조:

• 스택, 큐, 우선순위 큐, 덱 (double-ended queue), 리스트, 링크드 리스트, 해시 테이블
• 그래프 (노드, 에지, 가중치, 방향성 등), 트리, Trie, B-트리 (B-Tree)

알고리즘:

• 기초 (정수론, 배열, 문자열), 시간복잡도, 반복, 재귀, 정렬, 완전탐색 
• DFS, BFS, Disjoint Set (유니온-파인드 기법), 이분 그래프, 최소 신장 트리 (프림, 크루스칼 알고리즘), 위상 정렬, 최소 비용 계산 (다익스트라, 플루이드-와샬 알고리즘)
• 다이나믹 프로그래밍, 그리디

컴퓨터 구조 (CS:APP 책):

• 챕터 1 (개요), 챕터 2 (부동소수점 등), 챕터 3 (어셈블리, 프로시저 등)

 

알고리즘과 한자

컴퓨터공학과 복수전공을 택했던 2016년, 그 해 수강했던 CS 기초 과목의 교재가 바로 CS:APP였고, 당시 과제의 일부로 이 글을 작성한 지도 어언 9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당시 저는 삼성에서 지원하던 SCSC(Samsung Convergence Software Course)라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복수전공을 택했고, 경영학도로서 CS 기초를 다루는 과목들을 접하며 들었던 제 감상은 "적당히 듣고 넘겨야지"였습니다. 아직 개발자/엔지니어로서의 길을 걷기로 정한 것도 아니고, 수강 이유는 단지 '전공필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나마도 알고리즘은 복수전공생들에게 필수가 아니었고, 3학년이 지나가던 저는 유학길에 오르며 수강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알고리즘을 배울 기회를 넘겨버린 저는 개발자/엔지니어로의 여정을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한 후에도 알고리즘에 관심을 두지 않았고, 어쩌다 보는 코딩테스트는 전부 이 글에 나오는 반복문 떡칠 비슷한 무언가만 작성하다가 예외 없이 떨어졌습니다 (신입 채용, 부트캠프 등). 알고리즘 배울 시간에 웹개발이나 더 보자는 마인드였기에 동기들보다 웹, 클라우드, 인프라 등의 지식은 열심히 쌓았지만 정작 이를 어필하기 전에 통과해야 하는 코딩테스트를 계속 놓치는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지경에 이르기까지도 알고리즘을 왜 배우는지를 몰랐습니다.

우리는 한자를 왜 배울까요?

오케이, 산업혁명 이래 세상의 역사는 서구권 중심으로 흘러왔기에, 모든 학문은 영문으로 통하니, 영어를 배우는 이유는 그것 때문이라고 칩시다. 그렇다면 한자를 배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돌이켜보면, 학교 다니면서 한문 선생님이 "우리 집은 뼈대가 있는 어디어디쪽이야"라며 자랑하는 것은 본 적 있어도, 그들이 정작 한자를 배워야 하는 이유에 대해 납득 가능하게 설명하는 것을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 이유는 결국 '외워야 하니까', '내신이 중요하니까' 같은 것뿐이었습니다. 훗날 저는 그들의 말마따나 한자를 달달 외우게 되었지만, 정작 그 이유는 일본어였습니다. 수능에서 일본어를 선택했거든요.

아무튼 시간이 흘러 미국 유학길에 오른 저는 언어학 교양과 작문 과목을 수강하게 됩니다. 이 두 과목에서 저는 서구권이 "학문"을 다루는 자세에 대해 저는 처음 배우게 됩니다. 서구권의 대학은 (적어도 제가 나온 곳은) 무려 고대 로마부터 시작한 학문 체계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들은 학문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 그 기원을 그리스어와 라틴어에서부터 짚습니다. 강의실에서 만난 교수님은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단어의 어원을 알면 그 개념의 진짜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비로소 더 깊이 사고할 수 있습니다."

그제서야 저는 한국에서 외운 한자가 떠올랐습니다. 그냥 외우라니까,라고 생각했던 것을 지구 반대편에서 작문, 언어학 교양에서 그 이유를 깨우치게 된 것이지요. 고등적 사고가 요구될수록, 더 로우 레벨로 파고들수록, 오히려 필요한 것은 근본적인 것들입니다. 돌이켜보면 수능 때 그 수천 자의 한자들을 외운 뒤로, 비단 일본어뿐만 아니라 국문을 접할 때의 제 인식도 상당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가령 저는 더 이상 素数(소수)와 少数를 헷갈리지 않게 되었고, 浮動小数点(부동소수점)의 개념을 처음 접하며 이 단어에서 '부동'이 '안 움직이는[不動]'이 아니라 '떠다니는[浮動]' 소수점이라는 것을 바로 눈치챌 수 있었습니다.

Credit: https://www.investopedia.com/terms/a/assembly-language.asp

우리는 컴퓨터과학을 왜 배울까요?

HTML, CSS, JS, 리액트, 자바 스프링, 이런 웹개발에서 흔히 요구되는 스택을 배울 때 우리는 엄청 어려운 알고리즘을 써먹는 경우를 보기 어렵습니다. 엄청 어렵기는커녕 재귀함수 하나만 나와도 '이거 유지보수는 어쩌려고' 같은 반응을 볼지도 모릅니다. 차라리 자바 스프링 온라인 강의에 집중하는 것이, 바로 취업해야 하는 사람들에겐 더 적합한 답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번 4주간의 경험은 위에서 언급한 한자의 필요성과도 같은 것을 새삼 깨닫게 해줬습니다. 사실 당장 일상생활을 위해서는 한글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국한문혼용은 벌써 수십 년 전에 폐지되었고, 한국어는 일본어와는 달리 음절 단위의 특성상 한자를 '굳이' 혼용할 이유를 찾기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한자를 배울 필요가 없냐면, 전혀 그렇지 않다고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일상생활을 벗어나 국문 학술지나 법전을 읽어보면 그곳에는 생소한 한자어들 천지입니다. 전문가들이 무슨 장벽을 쳐놓고 아랫사람들에게 군림하고 싶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닙니다. 만국 공용어인 영어를 쓰는 미국의 대학이 정작 학생들에게 라틴어를 가르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깊은 사고를 표현하기 위해 동아시아에서 한자는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컴퓨터과학 전공 과정에서 알고리즘, 자료구조, 컴퓨터구조, OS, 네트워크를 가르치는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지금 당장 이들을 쓰지는 않겠지만, 이들을 한 번이라도 거쳐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현업에서 본인에게 생소한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 대처하는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혼자가 아니야

4주간 밥 먹고 백준만 풀었다지만 그렇다고 이것들이 알아서 제 뇌속으로 들어왔냐면 그건 아니었습니다. 수능 수학과 마찬가지로 3분만에 구현에 들어가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3시간을 붙잡고 있어도 마땅한 접근법조차 떠오르지 않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동료학습이 빛을 발하는 것은 바로 이런 때였습니다. 정글에서는 매일 1회 이상 배정된 팀원들과 교류하는 '코어 타임'을 가지게 됩니다. 여기서 저는 제가 이해가 안 가는 점들을 동료들에게 이야기하고, 아는 것은 서로 공유하고, 이 과정에서 공부에 어느 정도 강제성까지 더해지며 여태까지 제가 외면했던 알고리즘에 바로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알고리즘 문제에서 수십 줄의 지저분한 반복문을 쓰다가 다른 사람들이 인터넷에 올려놓은 해답을 보고 마냥 신기해하던 저는 이제 기본적인 접근법을 터득하였습니다. 코딩테스트 3번에서 뒤도 안 돌아보고 던지던 그래프 문제들에 대해 저는 다시 볼 수 있었습니다. 남들 말 듣고 DP에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던 저는 그게 사실 '기억시키며 풀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아직 상상력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그리디 문제를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4년으로도 올리지 못했을 성과를 저는 이번 4주만에 이루어내었습니다. 몰입 환경도 중요하겠지만 역시 무엇보다도 결정적이었던 건 4주간 저와 함께하였던 동료들일 것입니다. 이번 주도 마찬가지로 동료들에게 감사함을 느끼며, 앞으로 시작되는 C언어로의 여정에 몸을 맡겨봅니다.